박물관

부산 유일의 고총고분, 연산동 고분군 : 부산의 옛 기억 4

갈매기조나단 2014. 1. 2. 05:00

2009-2013 부산박물관 발굴조사 성과전, 부산의 옛기억 (2013.12.21 - 2014.2.23) 전시 중에서

연산동고분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연산동고분군은 부산지역의 유일한 고총고분(봉분을 높이 쌓은 고분)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최근 부산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M3호분으로 명명된 고분은 국내 최대규모의 5세기 수혈식 석곽묘임이 밝혀졌습니다. 

무덤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지배세력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실제로 이곳 고분에서 갑옷이 발굴되어 강한 무장세력의 성격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연산동고분군은 시기적으로는 복천동고분군 이후에 등장을 하였습니다. 

복천동고분군은 기원전후부터 5세기 전반까지 삼한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고

연산동고분군은 이후 이 지역이 신라에 완전히 편입된 후의 지역지배집단의 무덤입니다.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복천동고분군과 연산동고분군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아직까지 명확한 해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합니다. 


현재 18기의 고총고분이 확인되었고, 고총고분 주변에 1000기 이상의 중소형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부 발굴조사가 되었으나, 이후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도굴되고 훼손되어 유물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유적입니다.

현재 부산시 지정문화재 기념물2호로 지정되어 있어나, 최근 새로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국가 사적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연산동고분군의 위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산 90-4



배산의 서쪽면 중에서 북쪽으로 돌출된 산자락 능선에 고총고분군이 있습니다.

현재 연산터널이 통과 하고 있습니다. 

배산의 북쪽으로 돌출된 산자락의 능선따라 고총고분이 있음을 위성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측 경사진 곳에는 봉분이 거의 없는 1000기 이상의 작은 무덤들이 있다는 것이죠.





복천동고분군 세력과 연산동고분군 세력이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한쪽은 마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고, 다른 한쪽은 배산 자락에 근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배산에는 배산성지 즉 토성의 흔적도 현재 남아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동래지역의 넓은 평지를 조망하고 관리할 수 있고, 야산을 이용하여 방어에도 유리한 위치입니다.


지도만 보아도 연산동고분군세력과 복천동고분군세력이 과연 어떤 관계였을지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네요.

경주의 사로국이라는 작은 부족국가(?)에서 출발한 신라는 

울산지역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하여 기장군, 해운대구 지역의 장산국까지 무너뜨립니다. 

이후 신라 세력은 부산의 가야세력과 현재 동래지역에서 막다뜨렸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신라세력은 근거지를 배산쪽에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안산쪽에는 아마도 가야의 잔존 세력이 남아 있었겠죠. 

일정 기간동안은 온천천을 경계로 대립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7호분(서쪽) 7-1호분(능선 중앙)7-2호분(동쪽)이 연접해 있는데, 

이것은 신라 묘제의 양식이라, 연산동고분군의 세력이 신라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천동고분군에 비해, 연산동고분군에서는 고총고분과 중소형무덤간의 크기 차이가 현격합니다. 

즉 연산동고분군 시대에는 신분질서가 더 엄격하게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통일신라시대 동래고읍성이 연산동고분군의 동쪽, 현재 망미동 일대에 축성되어, 

고려말까지 이 일대가 이 지역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과정유적지도 이곳에 있군요.

(정과정유적지는 고려 의종 때의 문관인 정서가 이 망미동 현 정과정이 있는 곳으로 유배되어, 고려가요를 지어 유명)


연산동고분군에 관한 안내책자 내용입니다.